포켓몬을 하던 기억이 자꾸 난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인가 더 어렸을 적인가는 기억 나지 않지만, 내 형 방에 있던 컴퓨터엔 포켓몬스터 골드가 에뮬로 깔려 있었다. 한글 패치도 완벽히 되어있는 채로. 그리고 그 나이대의 내가 마땅히 할 수 있는 게임을 깔지 못하도록 되어있던 나는 포켓몬 골드만 몇 번이고 클리어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생겨난 포켓몬의 애정은 아직까지 이어져 왔다. 포켓몬 고를 국내에서 플레이 하지 못하는건 지금 생각해봐도 참 아쉬운 일이지만, 베트남에서 잠깐 플레이 해본 바로는 딱히 내 옛날 기억에 부합할 만큼 재미가 있지도 않고 그다지 혁신적이라고도 느껴지지 않아 실망했었다.
포켓몬을 플레이하다보면 참 많은걸 느낀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당시 드문 오픈월드형 게임으로써 자전거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낚시를 하고 포켓몬과 함께 이리저리 헤엄치며 상공을 날다 보면 포켓몬 세계에 깊게 몰입되게 된다. 그리고 처음엔 보잘것 없던 레벨 5 리아코가 나중엔 강력한 장크로커다일이 되는걸 보면서 우리사회에 가장 큰 가치인 노력과 경쟁, 도전에 대해서 그 어린시절 배울 수 있었다.
그 전에 집고 나가야 할게 있다. 포켓몬 세계 즉 포켓몬이라는 게임에서 포켓몬 개인의 강함을 나누는 척도는 두개가 있다. 하나는 레벨이고 하나는 개체값이다. 레벨은 경험을 통해 혹은 특수한 아이템을 통해 키워지는 이른바 후천적 강함이라고 말한다면 개체값은 프로그래밍 당시에 정해진 이른바 선천적인 능력의 값이다. 현실에 빗대자면 레벨은 노력에 따른 성과를 의미할 것이고 개체값은 선천적인 재능이나 우리나라같이 부의 세습이 일상화 되어있는 곳에 한정해서는 집안의 재산이라고도 표현 할 수 있겠다. 즉 같은 70레벨의 포켓몬이더라도 개체값이 낮은 포켓몬은 순수한 방법으로는 당연히 자신보다 개체값이 강한 포켓몬에게 질 수 밖에 없는것이다.
우리가 주인공으로써 플레이 하는 포켓몬에서는 처음에 불,물,풀 타입의 포켓몬을 증정해준다. 어떤 조건 하에서나 아니면 그럴 운명이거나, 아무튼 주인공은 이른바 스타팅 포켓몬을 비교적 쉽게 얻게 된다. 그리고 이 스타팅 포켓몬들은 가장 강력하진 않더라도 매우 준수하거나 혹은 강한 범주에 속하는 개체값을 가지고 있다. 이런 포켓몬을 지닌 주인공이 초반에 마주치는 트레이너들은 개체값이 낮은 꼬렛을 지닌 반바지 소년 영수 같은 사람들 뿐이다. 같은 5레벨, 혹은 더 높은 레벨의 꼬렛을 가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영수는 주인공을 이길 수 없다. 왜냐 개체값이 낮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쉽게 영수를 이기고 경험을 얻어 더욱 강력해진 리아코를 가지고 떠나지만 영수는 그자리에 남아 이렇게 말한다. '우와 너 정말 강하구나. 나도 너처럼 언젠가 강해질거야.' 어린 시절에도 이 얘기를 들으면 항상 억장이 무너졌다. 하지만 영수는 심지어 주인공의 라이벌 조차 아니다. 주인공의 라이벌은 따로 있다. 영수는 주인공에게 그만큼 의미없고 보잘 것 없는 존재지만 영수는 주인공을 목표로 열심히 노력한다. 특히나 골드버전은 전화번호를 교환함으로써 나중에도 다시 결투할 수 있는 이벤트가 생기는데 전화를 받고 다시 결투를 해보지만 여전히 너무나 약한 꼬렛 혹은 레트라를 지닌 영수를 보며 항상 안쓰럽고 딱했다.
주인공의 목표는 포켓몬 마스터다. 목호를 포함한 사천왕을 이기고 포켓몬 마스터가 되어 세계에 널리 알려진 포켓몬 트레이너가 되는것이다. 하지만 영수의 목표는 이보다 훨씬 작을 것이다. 왜냐 그는 꼬렛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아무리 노력하고 더 많은 포켓몬을 잡는다고 할지라도 그는 포켓몬 마스터가 될 수 없다. 그가 자란 연두 마을에서는 꼬렛보다 강한 포켓몬이 자주 출몰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가 최대한으로 노력하여 시간이 흐르면 그는 결국 체육관 관장정도가 될 것이다. 그 정도가 그의 노력의 한계일 것이다. 그는 결국 자기보다 더 재능있고 강한 자에게 뱃지를 넘겨주고 다시 그 자리에 남을 것이다.
누군가는 열심히 노력하면 포켓몬 마스터가 되지만, 누군가는 열심히 노력하면 동네 체육관 관장이 된다. 둘 다 처음 시작은 같은 목표, 같은 마을 비슷한 레벨에서 시작했지만 개체값에 의해 그들의 운명은 갈리게 되었다. 너무나 당연한 이치지만 뼈저리게 아프다. 아무나 최고가 될 수는 없다. 선택된 자만이 최고가 될 수 있다.
단순히 게임 속이야기가 아니라 현실에서도 주인공 같은 사람이 있고 영수같은 사람이 있다. 둘다 열심히 노력하지만 결국 이루는 성취의 크기는 서로 비교 할 수 없을 만큼 크게 차이가 나는 두 존재가 있다. 물론 현실에도 사천왕이 있고 범접할 수 없는 챔피언도 있지만 이를 위협할 수 있는 주인공이 있는 반면 그 밑에서 포켓몬 세계를 구축하는 많은 반바지 소년들이 있는 것이다.
그러면 나는 어떤 사람인가. 천부적인 선물을 갖고 있어도 노력을 끊임없이 하며 전진하는 주인공일까 혹은 그와 같이 노력하지만 꼬렛을 가지고 있는 영수 같은 사람일까? 나는 그 둘도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나는 꼬렛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