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상

도날드 트럼프

minki0719 2017. 2. 3. 09:03



무엇이 트럼프를 자유국가의 수장인 미합 중국의 대통령으로 만들었는가. 이 의문을 많은 이들이 여러가지 방법으로 해소해 보려 하지만 결국 남는 결론은 그가 이제 대통령이라는 사실 뿐이다. 80년대 부터 시작된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물결은 불확실한 현대사회속 새로운 정의를 실현하는 듯 했다. 하지만 지금껏 인간은 증오와 분노를 어디론가 해소했고 그로인해 갈등하며 발전해 왔다. 물론 그 과정에서 무차별적 억압도 있었겠지만 결국 그 분노를 특정 대상에게 해소함으로써 인류의 발전 방향을 찾아낸 것이다. 


냉전의 종료와 함께 찾아온 평화의 바람으로 인한 평화와 균형적인 발전은 지금껏 공격적이고 분노를 원동력 삼아 움직이던 인류의 방향을 획기적으로 바꾸었다. 하지만 냉전의 종료는 곧 자본주의의 승리였고, 이를 기반으로 한 발전은 어느 국가마다 한계점이 있었다. 부의 완전한 분배를 향한 길은 멀기만 했고 빈부의 갈등차는 심해져만 갔다. 그로 인해 피해받는 이들은 가장 부유한 이들도 아니었고 가장 불우한 이들도 아니었다. 오히려 중간층을 이루는 대부분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극빈층 처럼 잃을것이 없는 것도 아니었고 부유층처럼 자신의 자산이 순식간에 없어질 걱정이 없는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끊임없이 경쟁해야 하는 상대가 존재했고 앞서 말했 듯 분노를 원동력 삼아 움직였다. 자신이 밟을 수 있는 상대는 밟았다. 예를 들어 자신보다 사회적 경제적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상대. 즉 이민자나 여성을 억압하며 자신의 부를 축적해왔다. 하지만 평화의 시대가 도래하고 오히려 그들의 이런 행태가 억압받게 되었다. 또한 자본주의의 한계점이 다가오면서 찾아온 경제의 불황과 겹친 그들의 분노는 오히려 예전보다 더욱 강해졌다. 


트럼프는 그 분노가 어디서 오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페미니스트들을 공격했으며 그에게 언행의 신중함을 요구하는 언론들을 매도했고 많은 이민자들과 종교와 인종의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았다. 그와 함께 자신의 분노가 억압당했던 많은 이들은 그를 따랐고 많은 이들의 분노를 힘입어 마침내 대통령이 되었다. 


자신을 따르는 자들의 불만이 뭔지, 그들이 분노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꺠닫는 것은 지도자로써 매우 중요한 덕목이다. 그리고 그들의 억압받는 분노를 해방시키는 것또한 강인한 지도자의 면모이다. 나 또한 이 분노가 억압되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이 역시 역효과를 불러일으키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트럼프는 많은 이들의 분노를 해방시켜 '이용'했다는 점이다. 진정 훌륭한 지도자라면 그들의 분노를 '해결'해야 한다. 분노를 분노로 소비하는 것은 더 큰 분노를 낳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