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에 떨어졌다.
사실 1차를 아슬아슬하게 붙었을 때부터 조금은 불안했는데 역시나 떨어져 버렸다 12월 되지도 않을 한예종 시험을 보겠다며 객기로 군대를 4월로 미뤘는데, 이젠 죽도밥도 안되게 생겼다.
일단 가장 빠른 영상병은 5월. 화요일에 지원이 가능하다. 휴학한지 근 1년 6개월이 지나야 군대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한예종에서 빛의 속도로 탈락한 뒤 내 가슴 깊숙한 곳에서는 알게모를 열등감이 끔틀 거렸다. 단순히 한예종에 합격하지 못했다는 이유 만은 아니다. 군대를 언제 가야할지, 갈수 있을지 모르는 상황속에서 내 주변 많은 경쟁자들은 여전히 자신의 꿈을 향한 태동을 멈추지 않고 있었다. 나는 계속 무기력해져 갔다. 무기력해져 간다. 지금 당장 내가 좋아하는 걸 위해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다고 느낀다. 되게 익숙한 느낌. 고삼때 느꼈던 그 느낌이다. 아무것도 할 수없고 아무것도 하기 싫다.
나도 어지간히 사람들 눈치 많이 보는구나. 맨날 천재 콤플렉스에 빠져서 누구보다 일찍 성공하고 싶은 욕심만 그득한 병신 쓰레기.
군대 문제에 얽매이지 않을때만 하더라도 나는 정말 잘 살고 있었다. 내 꿈과 관련된 경험도 굉장히 많이 했고, 그 외의 경험도 정말 많이 겪었다. 너무 행복했고 누군가가 나에게 어떤 생각을 가지던지 신경 쓰지 않고 살았다.
내 주변에 사람들이 있었고 항상 할 일이 있었다. 누구 의견을 신경쓸 필요도 없었고 누구의 인정을 갈구 하지도 않았다. 누군가의 좋은 일에는 진정으로 기뻐할 수 있었고 내 앞길도 꽤나 긍정적인 전망을 갖고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나는 굉장히 침체 되어있고 이 이유를 알고있다. 나는 한 사람의 칭찬보다는 불특정 다수의 인정으로 부터 힘을 얻는다. 아마 빌어먹을 부계 유전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군대를 준비하는 입장에서 나는 스스로 고립되어 갔고 이는 나를 침체 시켰다.
이 더러운 기분을 떨쳐내는데는 무언가 몰두하는게 최고지만 지금 당장 무언가 몰두하기엔 군대를 가야하고 하지만 군대를 언제 갈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이런 악순환만 계속 반복된다. 그런 악순환 속에서 나한테 특이한 행동양상이 생겼는데, 그건 대한민국의 모든 사회문제를 군대와 귀결 시켜 버리는 것이다. 어느정도는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절대 맞지도 않다. 그냥 내 기분 풀이다.
이 무기력함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을 거 같다. 하지만 군대 때문이 아니더라도 나에게 이런 시간이 또 찾아오면 어떡할까. 내가 하고 싶고 해야할 걸 해야하는데 내가 손쓸 수 없는 이유로 부터 온 상황 때문에 아무일도 할 수 없는 채 계속 가라 앉기만 하는 때가 온다면.
그 때도 여전히 무기력해 있을까 나는. 그렇게 나약하고 손쓸 수 없는 사람인가. 그냥 지금 미리 예방접종 한다는 느낌으로 천천히 익숙해 져야 겠다. 내가 침체되어 있는 동안 남들의 성공을 씁쓸하게 삼키면서 내가 가야할 길을 천천히 살피는 법을.